우연한 혹은 끌어댕긴 계기로 이 책을 추천받았다.
같은 건축학과 학사를 졸업한 오영욱 작가는 13개월간 바르셀로나로 행복을 찾아 떠난다.
어학교만 다니며 나머지 시간은 행복을 찾아간 이야기를 개인적인 삽화와 글과 함께 담아냈고 읽는내내 꽤나 즐거웠다.
모두에게 공평하듯, 행복을 찾아떠난만큼 오기사의 기회비용도 컸다.
원래 있던 회사의 연봉은 많이 올랐고, 흔히 말하는 '엄친아'들의 자랑거리도 들려왔다.
공감이 많이 갔다.
나 역시 밀물이 들어오던 좋은 시기에 회사를 그만뒀고 주변에서는 결혼소식이 들려온다.
하지만 급하지않게 쓰인 그의 책을 보며 내 마음만큼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간듯 차분히 가라앉았다.
인상적인 점을 먼저 한 가지 얘기하자면,
그는 13개월간 카페, 바, 광장에 자주 간듯했고 그게 좋았다.
평소에 가기힘든 곳에 여행을 간다면 명소를 보기에도 바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사실 느긋하게 카페, 바, 광장을 찾는 것을 선호한다.
내가 13개월을 있더라도 오기사와 비슷한 그림을 그리지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그가 추천한 장소들 중 일부를 구글맵에 저장했다.
여러모로 배우는 즐거운 독서였다.
오작가는 나보다 훨씬 깊이있는 건축가의 관점에서 쓴 글은 좀 더 핵심에 가까운 듯했다.
글을 쓰는 것은 좋아하지만, 어떻게 기록할까에 대해선 여전히 고민단계인 나에게 오작가는 그 좋은 예가 되어준다.
그림을 그려도 좋다. 사진과 그림을 섞어도 좋다. 영상도 좋다.
전달될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 가볍게 시작해보는 것이다.
기억에 남는 문장들
'적당히 앎' 단계에서의 문제는 하고싶은 말이 많아진다는 점이다.
하지만 역시 쓸데없이 많은 말은 하지 않음만 못하다.
여행에 있어 '아는만큼 보인다'는 화두가 유행했다.
하지만 지식의 얕음보다 더 강하게 인간을 속박하는 것은 선입견과 편견, 그리고 닫힌 마음이 아닐까.
정작 우리는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에 열려 있지 않으면서 혹은 너무 한쪽으로 편식하면서 남들에게는 우리 것이 좋다는 식으로 강요하려고 든다.
여행을 떠나는 입장이라면 조금 더 마음을 열어도 좋을 것 같다.
멀리까지 해외여행을 가서 낯선 문화와 부딪히며 줄곧 '한국이라면 이랬을 텐데......' 궁시렁대는 것보다는, '이곳 사람들은 이렇게 사는구나'하고 인정하면 여행이 더 즐거울 수 있다는 말이다.
가령 기차에서 만난 스페인 사람이 '나, 한국 영화 좋아해'라고 말하기를 기대하지 말고, 자신이 먼저 '나, 스페인 영화 몇 편 봤는데 좋았어'라고 이야기를 꺼내면 더 좋을 것이라는 말이다.
백만 명이 다 마음을 열고 여행을 나서자는 이야기도 아니다.
다만 자신이 듣길 원하는 만큼 준비하자는 것이다.
그냥 침잠해있는 어둠이 적성에 맞는 사람은 그냥 그대로, 대신 남에게 기대도 하지 않은 채 다니면 된다.
바르셀로나에는 바다가 있다.
바르셀로나 시민들은 틈만 나면 지친 도시의 일상에서 벗어나 조금만 걸어도 눈부시게 펼쳐지는 지중해로 몰려간다.
주말이 되면, 잠시 일을 잊고 바다로 나가 나자빠지는 메트로폴리스의 삶.
관광객이 아닌 자신들의 삶을 위하여 바다가 존재했고, 그랬기에 그 바닷가를 매력적인 장소로 만들 줄 알았던 지혜가 부럽다.
바르셀로나에는 가우디가 있다.
가우디 건물에 들어가 방명록을 보면 재미있는 점이 있다.
한글로 쓰여있는 '가우디는 천재!','우리나라는 왜 이런 건물을 못 짓나?'같은 것들이다.
물론 건축을 하는 입장에서 봐도 가우디는 천재적이고 감각적이다.
다만 가우디가 활동하던 한 세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천재는 혼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도시 행정과 시민 전체가 자신의 도시를 이루는 건물들 하나하나에 관심을 가졌던 바르셀로나 사람들이 이룩한 노력의 결과다.
물론, 가우디 외에도 바르셀로나는 멋진 건축물들로 넘쳐난다.
건축가의 고민의 결과로 탄생한 광장의 설계 당선 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 혼자만의 의지로 한순간 잔디를 깔아 버린다던가,
비록 그것이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것일지라도, 충분한 가치가 있는 건물들이 개발 이익 논리에 의해 하루아침에 사라진다든가,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한 재건축을 위해 멀쩡한 건물을 하루빨리 바숴 버리는 것이 만연한 서울, 혹은 한국의 일상에서 혹시나 있었을지도 모를 천재 건축가는 어느 어두침침한 골방 작업실에서 최후를 맞이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의 것은 왜 이럴까 하는 생각 이전에 우리 자신이 공범이라는 생각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