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날과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다름없이 적당히 공부하고 적당히 쇼핑하고 적당히 적당히.
아무런 문제없다며 내 의식은 완전히 마비되어있지만, 머리속 모든 모세혈관이 꽉 막혀있는듯해서 머리를 열고 막힌 곳을 긁어내버리고싶은 답답함.
다른 사람들도 느낀적이 있을까?
아마 알고있었을지도 모른다. 분명 알았을 것이다.
내가 항상 여유가 없는건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라는 것.
마치 물 속에 있는듯한 이런 답답함은 분명 어딘가 잘못된 채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
행동하지 못한채 쌓인 것들이 엄한 곳에서 폭발하는 날은 참사일까 축제일까.
Wake up call
오늘 아침이라고 별일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내가 별일로 만든거지.
중고거래를 자주하는 나는 지난주 편의점 택배를 통해 물건을 구매했다. 내가 생각했을때는 와야했을 택배가 오지않았다.
(이 내 생각조차, 문제라도 만들지않으면 견딜 수 없었던, 내가 쌓아온 것들의 결과이리라.)
다시 급하게 살펴본 판매자와의 문자내역을 넘겨짚어 사기라고 확신했다.
내 시간을 헛된 사기거래에 썼다는 망상에 나는 은행, 더치트(사기거래 공유플랫폼), 사이버수사대 등에 전화를 하고있었다.
설령 이 중고거래가 사기였을지라도 실제로 거래를 위해 사용한 시간은 30분조차 되지않고, 오히려 사기라고 오해하고 후속조치하는데 더 많은시간을 낭비했다.
그럼에도 나는 헛되게 보낸 과거의 모든시간을 보상받기라도 하려는듯 어딘가에 화가 났었다.
중간에 연락이 닿지않던 판매자에 연락이 왔다.
그러다보니 내가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리고 그보다 훨씬 거대한 것을 깨달았다.
나는 완전히 머리 속에서 살고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항상 계몽적인 음악을 좋아했다.
대표적으로 Avicii의 'Wake me up'이라는 노래 가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Feeling my way through the darkness, Guided by a beating heart
I can't tell where the journey will end, But I know where to start.
hey tell me I'm too young to understand, They say I'm caught up in a dream
My life will pass me by if I don't open up my eyes
Well its fine by me.
마치 세상은 나를 어리게만 보고 이해못하지만, 나 자신만큼은 내가 여행을 시작해야할 그 곳을 정확히 알고있다.
그렇기에 심장이 시키는대로 용기있게 살아가는 사람이 그려진다.
나는 그 사람을 내게 투영했었다.
강하게 투영할수록, 그와 다르게 살아가는 나를 보고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이 쌓여 쓰레기통처럼 변해갔다.
그리고 오늘, 내안에 쓰레기통이 넘쳐 엄한 곳에 터지는 광경을 봤다.
So what?
인생을 관통하는 깨달음이 있다면 무엇일까?
그저 들어서, 읽어서 당장에 생각나는 번지르르한 말의 깨달음보다 오늘같이 못난 나를 보게될 때 나는 관통당한듯 했다.
관통당해서 정신이 죽은걸까. 적당히, 그저 적당히 해오던 모든 것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대학을 졸업했을 때 적당히 들어서 하나도 남지않은 배움들이 후회됐다.
연애가 끝나면 온 사랑을 쏟지않은, 솔직하지않은 내 모습이 후회될 것이다.
오늘이 끝나면 내가 먼저 했다면 서로의 기쁨이 될 수 있었을 인사 한마디, 그 한마디조차 건내지 않았던 무관심 내지는 관성, 작은 먼지같은 것에 집착하느라 망쳐버린 시간과 에너지를 후회할 것이다.
죽음이 눈앞에 온다면, 또 이렇게 적당히했던 것들이 떠올라 괴롭지않길.
정말 죽음이 눈앞에 온다면, 떠올리고 싶은 것들은 이런 것이다.
원하는 시간에 일어나서 거울에 비친 날 보고 '쨔식, 여전히 멋지네'하곤 새벽을 가르며 달리는 고요함 속 새의 지저귐.
무엇을 얘기하던 흠뻑 빠진 아이처럼 말할 수 있고, 무엇을 듣던 질문세례를 던지는 아이처럼 듣는 습관.
그리고 해보기도 전에 결정을 괴로워하기보다, 뭐든 해보고나서 결정하는 태도.
바닥에 내려앉아 곧대로 들여다보니, 나는 괴로울 수 밖에 없는 시간을 쌓아왔었다.
성인이 되고도 책임을 진다는게 뭔지도 모른채 그저 낯설고 무서워 선택이란걸 하지않았다.
나를 막고있는 것은 오직 나 자신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상황을 개선하지않은채 불만만 갖는 바보같은 선택을 했었다.
그러다 더 이상 내 선택들을 꼴도보기 싫어서 몽땅 버리려고 미니멀리스트를 흉내내는데 집착했다.
그래, 나는 흉내를 냈다. 그래서 '집중'이 아닌 '집착'을 했다.
기억도 안나는 어느날 이후 나는 내가 된 적이 없었고, 그래서 정신이 죽을 때 주마등에서조차 그런 순간은 나오지 않았나보다.
이건 기회다.
주마등에 나올만한 장면들을 다시 만들어가라는 기회.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다시금 되돌아보고, 그때의 스스로에게 부끄럽지않게 - 어떤 핑계도 집착도 없이 - 다시금 나를 찾아가라고!
How?

마치 없었던 날같던 그런 날 하루가 갑자기, 그리고 서서히 선명해지며 기억났다.


이름은 까먹어버렸지만 날 찍어준 스페인 여자분도 내가 눕는대로 자연스럽게 누워서 날 찍어줬다.
여름같은 햇살이 비추던 겨울날, 나는 햇살을 가장 자연스럽게 즐길 수 있는 사람이었다.
지금의 나는 그랬던 내가 너무너무 좋다. 동경할 정도로.
그렇다면 어떻게? 도대체 어떻게 나를 찾을 수 있지?
거기에 대한 답을 나는 방금 찾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문득 생각난 2018년 1월의 어느 햇살좋은 겨울날의 사진 속에서.
그 당시의 나는 외국친구들을 보면 항상 말을 먼저 거는 사람이었다.
어떤 목적이 있었다기보다 그저 영어를 좋아했고, 영어권 국가들의 도전에 대한 문화가 좋았다. 그때만큼 나는 그 순간속에 존재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그들과 더 편했고, 우리는 너무나 쉽게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세계여행, 순례길, 호캉스(Stay-cation), 누군가는 미슐랭 식당을 통해. 사람들은 여러가지 각기다른 방식으로 자기를 찾고 위로한다.
나는 어딘가에 이끌리듯 올해 4분기, 유럽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나는 2018년 유럽에서 만났던 친구들을 7년만에 다시 만날 것이다.
그리고 그들과 이야기할 때, 나는 7년동안 적당히 살았다고 또 한번 적당히 말하기보다 나만의 이야기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꾸며내지 않아도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되었으면 한다. 내가 뭘하더라도 예전처럼 매 순간을 잡을 수만 있다면(Seize the day) 이야기는 분명 나올거라는걸 알고있다.
유럽행 티켓이 모든걸 해결해준다고 믿지않는다.
이렇게 장황한 생각끝에도 결국 내가 당장 해야할 일은 제 시간에 일어나는 것. 이불을 개는 것. 제 시간에 자고, ‘일어나야 하는데~’하는 생각과 행동의 간격을 줄이는 것.
조금만 더 힘내서 달리기와 커피로 하루를 맞이하는 것.
그리고 마땅한 것들을 시작하는 것.
그렇지 않은 것들을 하지않는 것.
이것을 반복하는 것.
이게 작지만 확실한 내 액션플랜이고, 그러다보면 2026년 1월의 어느 겨울날, 나는 분명 다시한번 여름같은 햇살을 가장 자연스럽게 맞이하고 있을 것이다.
그때 다시보자 우리! 😆
오늘은 여기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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